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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재미있는 고사성어 - 수수방관(袖手傍觀)

by ANCA65 2025.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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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故事成語)는 고사에서 유래된 한자어 관용어를 말한다. '고사'란 유래가 있는 옛날의 일로 주로 전근대의 중국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일을 가리키고, '성어'는 옛사람들이 만들어낸 관용어를 가리킨다. 단어 길이는 네 글자가 가장 많지만 짧은 것은 두 자, 긴 것은 열두 자(예: 知命者不怨天知己者不怨人)나 된다. 속담과 용법이 같으나 언어적으로 그 형태는 다른데, 고사성어는 관용단어인 반면 속담은 관용문구다. 물론 고사성어가 한문에서는 문장이 되는 경우가 많으나, 한국어 안에서는 엄연히 하나의 고사성어 전체가 한 단어처럼 쓰이고 있다. 오늘은 '수수방관'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자.

 

 

한문 그대로 해석

 

📌 수수방관(袖手傍觀)
👉 袖(소매 수): 옷의 소매
👉 手(손 수): 손
👉 傍(곁 방): 곁, 옆
👉 觀(볼 관): 보다

 

📌 '소매에 손을 넣고 곁에서 바라본다'는 뜻으로, 즉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지켜만 본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현대적 의미와 예시

 

📌 현대적 의미
‘수수방관’은 오늘날 소극적인 태도로 방관하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개입하지 않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이는 사회적 문제, 정치적 갈등, 회사 내 갈등 등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으며, 단순한 방관을 넘어 책임 회피나 도덕적 해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 현대적 예시
👉 사회적 문제에서의 수수방관

현대 사회에서는 불의(不義)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길에서 폭력을 목격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신고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방관하는 경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는 심리학 용어도 있으며, 이는 많은 사람이 있을수록 각자가 책임을 회피하게 되어 행동하지 않는 현상을 설명합니다.

👉 회사 내에서의 수수방관
직장에서 동료가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이를 알면서도 개입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직원이 상사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다른 동료들은 불이익이 두려워 모른 척하는 상황도 ‘수수방관’의 사례입니다. 이는 조직 내에서 부정적인 문화를 조장할 수 있습니다.

👉 정치 및 사회적 이슈에서의 수수방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 이를 알고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수수방관’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도 정부나 기업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 개인의 인간관계에서의 수수방관
친구가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때, 돕지 않고 방관하는 태도도 수수방관의 사례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지만 개입하지 않고 모른 척하는 것도 이에 해당합니다.

📌 이러한 사례를 통해 ‘수수방관’은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 사회 전반에서 중요한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사성어가 만들어진 당시의 시대 상황 및 유래


📌 ‘수수방관’의 유래
‘수수방관’이라는 표현은 중국 고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이 고사성어가 처음 등장한 문헌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유사한 표현은 춘추전국시대와 한나라 시대의 역사 기록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수수방관’은 중국의 전쟁, 정치적 갈등, 외교 관계에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작은 나라들이 중립을 유지하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지도자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 등에서 이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
👉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외교와 수수방관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는 강대국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던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이 당시 약소국들은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 신중한 외교 정책을 펼쳐야 했습니다.
🔹 예를 들어, 초(楚) 나라와 진(秦) 나라가 싸울 때 제(齊) 나라가 개입하지 않고 방관한 사례가 있습니다. 제나라는 초나라를 도울 수도 있었지만,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국제 정치에서 강대국 간 갈등에서 중립을 유지하는 국가들의 태도와도 비슷합니다.

👉 한(漢) 나라와 흉노(匈奴)의 전쟁에서의 수수방관
한나라 시대(기원전 206년~220년)에는 흉노라는 유목 민족이 중국 북방을 끊임없이 위협했습니다.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은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많은 전쟁을 치렀는데, 한나라 내부의 일부 관리들은 흉노의 위협을 알고도 대응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나라는 한동안 흉노에게 고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관리들의 태도도 ‘수수방관’의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 삼국지(三國志)에서의 수수방관 사례
삼국지에서도 ‘수수방관’과 관련된 장면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위(魏) 나라, 촉(蜀) 나라, 오(吳) 나라의 삼국 관계입니다.
🔹 오나라의 태도: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에게 패배했을 때, 손권(孫權)은 촉나라를 도울 수도 있었지만,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결국 나중에 촉과 오가 연합하여 위나라에 대항했지만, 초기에는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 촉나라의 태도:
제갈량(諸葛亮)이 북벌을 준비할 때, 일부 촉나라 신하들은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제갈량이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 이처럼 ‘수수방관’은 중국 고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며, 군사적・정치적 갈등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무리 정리


‘수수방관’은 단순히 무관심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불의를 보고도 개입하지 않는 방관자의 태도가 큰 문제로 여겨집니다.
역사적으로도 수수방관의 태도는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중요한 순간에 ‘수수방관’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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